[작성자:] 찬두 이

  • 거짓말

    혼났던 날, 내가 실제로 배운 것

    사람들은 모두 거짓말을 하면서 살아간다. 크든 작든.

    어린 시절, 지금은 무슨 이유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 이유로 거짓말을 하고 아주 크게 혼이 난 적이 있다. 이상한 건 거짓말의 내용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데 혼났던 감각만 선명하게 남아 있다는 것이다.

    그날 어른들이 나에게 가르치려던 건 “거짓말은 나쁘다”였을 것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내가 그날 배운 건 그게 아니었다. 나는 들켰을 때 어떻게 되는지를 배웠다. 그리고 그 뒤로 오랫동안 거짓말에 대해 생각하며 살았는데, 그 생각의 방향도 “하지 말아야겠다”보다는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에 가까웠다.

    이걸 뒤늦게 미화할 생각은 없다. 나이를 먹으면서 확인한 건 오히려 이쪽이었으니까. 거짓말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안 하면서 살 수는 없다. 그리고 그건 칼이나 도구처럼 잘 다루면 사회생활에 분명한 이점을 주는 물건이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거짓말은 나쁘다”만 붙들고 있는 사람은, 실제로 거짓말을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게 될 뿐이다. 어설프게 하고, 어설프게 들키고, 그러고는 자기가 정직해서 손해 봤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 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기준을 만들었다.

    도구의 작동 원리

    기준을 세우려면 물건이 어떻게 생겼는지부터 알아야 한다.

    국어사전은 거짓말을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어 하는 말”이라고 적어두었다. 철학에서는 조금 더 정교하게, 네 가지 조건을 든다. 무언가를 진술하고, 그 진술이 거짓이라고 말하는 사람 자신이 믿고 있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말하고, 상대를 속일 의도가 있을 것.

    핵심은 두 번째다. 거짓말의 기준은 ‘그 말이 사실이냐’가 아니라 ‘말하는 사람이 무엇을 믿고 있느냐’다. 이게 실무적으로 중요한 이유가 있다.

    • 잘못 알고 틀린 말을 했다면 그건 착각이지 거짓말이 아니다.
    • 속일 작정으로 말했는데 우연히 사실이었다면, 그건 여전히 거짓말이다.
    • 사실만 골라 말하되 중요한 걸 빼놓아 상대가 오해하게 만들면, 문장은 전부 참인데 결과는 기만이다.

    세 번째가 가장 쓸모 있는 도구다. 위험도 대비 효율이 압도적으로 좋기 때문이다. 나중에 문제가 되어도 검증을 통과하고, 무엇보다 스스로 감당하기가 훨씬 쉽다. 실제로 일 잘하는 사람들이 쓰는 건 거의 다 이쪽이지, 사실을 뒤집는 쪽이 아니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되지만, 가장 오래 쌓이는 것도 이쪽이다.

    거짓말의 절반은 통과한다

    거짓말을 얼마나 알아채는지 측정한 연구가 있다. 206편의 연구, 24,483명의 판단자를 종합한 결과 정확도는 평균 54%였다. 동전 던지기가 50%다. 심지어 수사관 같은 전문가도 일반인보다 나을 게 없었다. 사람들이 근거로 삼는 시선 회피나 안절부절 같은 단서들은 실제 거짓말과 거의 상관이 없다는 것도 함께 밝혀졌다.

    즉, 사람은 거짓말을 못 잡아낸다. 절반의 거짓말은 그냥 통과한다.

    빈도 쪽 연구도 흥미롭다. 1996년 DePaulo 연구팀의 일기 연구에서 대학생은 하루 평균 2회, 일반 성인은 1회 거짓말을 기록했다. 그런데 나중에 더 큰 조사를 해보니 평균이 함정이었다. 응답자의 60%는 지난 24시간 동안 한 번도 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평균 1~2회는 모두가 조금씩 해서 나온 숫자가 아니라, 소수가 아주 많이 해서 나온 숫자였다.

    이 두 결과를 붙여 놓으면 그림이 선명해진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 도구를 거의 안 쓴다. 안 쓰니까 서툴다. 서투른 사람이 어쩌다 한 번 쓰면 티가 나고, 그 몇 안 되는 사례가 “거짓말은 결국 들통난다”는 통념을 만든다. 실제로는 능숙하게 쓰는 사람들의 것이 조용히 통과하고 있을 뿐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쪽에 속해 있었다.

    내 기준

    하나. 결과가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

    이게 다른 모든 것 위에 있다.

    거짓의 결과가 상대에게 해가 된다면 그건 더 이상 거짓말이 아니다. 그건 사기고, 범죄다. 이름을 바꿔 불러야 한다. 나는 여기서만큼은 타협하지 않으려고 했다. 이 선이 없으면 나머지 기준들은 그냥 범죄를 잘 저지르는 요령이 되어버리기 때문이다.

    판단이 애매할 때는 이렇게 물었다. 이 말이 통과했을 때 손해 보는 사람이 있는가? 없으면 도구고, 있으면 범죄다. 이 질문 하나로 대부분 갈린다고 생각했다.

    둘. 상대가 확인할 수 있는 일에는 하지 않을 것

    실전에서 제일 자주 쓰는 기준이다.

    상대가 마음만 먹으면 확인할 수 있는 사안이라면 시작조차 하지 않는다. 대신 아주 솔직하게 말한다. 늦었으면 늦었다고, 못 했으면 못 했다고, 모르면 모른다고. 여기서의 솔직함은 미덕이 아니라 판단이다. 확인 가능한 거짓말은 반드시 들킨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그리고 들킨 순간, 원래 문제는 사라지고 거짓말했다는 사실 하나만 남는다. 5분이면 끝났을 사과가 몇 달짜리 불신으로 바뀐다. 수지가 안 맞는다.

    들킨 거짓말은 거짓말로 끝나지 않는다. 그때부터는 배신이 된다.

    셋. 할 거라면 아주 잘 할 것

    어설프게 할 거면 안 하는 게 낫다. 이건 도덕의 문제가 아니라 실력의 문제다.

    들킬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계산되는 상황이라면 그건 실행할 수준이 아니라는 뜻이다. 기준 둘과 셋은 사실 하나의 질문으로 합쳐진다. 이게 통과할 것인가. 통과하지 못할 것 같으면 솔직해지는 편이 언제나 싸게 먹힌다.

    넷. 말하는 순간에는 스스로 믿을 것

    사람이 거짓말을 알아채는 단서는 내용이 아니라 태도에서 나온다. 두 번째 기준에 대해 자신 있다면, 가장 확실하게 통과하는 방법은 태도를 꾸미는 게 아니라 꾸밀 필요가 없게 만드는 것이다. 말하는 그 순간만큼은 내가 하는 말이 사실이라고 여기는 것. 그러면 흔들릴 게 없다.

    이 기준을 마지막에 둔 이유가 있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고, 확인될 일이 아니고, 통과할 수준이라고 판단이 끝난 다음에만 이걸 쓴다. 순서가 뒤집히면 이건 남을 속이는 기술이 아니라 나를 속이는 기술이 된다. 그 차이는 순서에 있지, 기술 자체에 있지 않다.

    기준은 한 번에 하나씩만 본다

    여기까지가 내가 오랫동안 믿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기준들은 잘 작동했다.

    그게 문제였다.

    나는 이 도구를 꽤 능숙하게 썼다. 기준을 지켰고, 심사를 통과시켰고, 오랫동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이 기준이 옳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증거가 아니라 그냥 아직이었다.

    돌아보면 이 네 개에는 공통된 결함이 하나 있다. 전부 거짓말 하나를 놓고 심사한다는 것이다. 이 말이 남에게 해가 되는가, 이 말이 확인될 수 있는가, 이 말을 잘 해낼 수 있는가. 모두 단수형이다. 총량을 보는 항목이 없다.

    그런데 거짓말은 하나로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가 통과하면 다음 거짓말은 앞의 것을 지키기 위해 필요해진다. 두 번째는 첫 번째의 알리바이가 되고, 세 번째는 두 번째의 알리바이가 된다. 각각을 따로 심사하면 전부 통과한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고, 확인할 수 없고, 잘 해낼 수 있으니까. 그런데 그것들은 이미 낱개가 아니라 하나의 구조물이 되어 있다. 그 구조물의 크기를 재는 기준이 나에게는 없었다.

    첫 번째 기준도 생각보다 약하다. “남에게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판정은 결국 말하는 그 시점의 내 계산이다. 그 계산은 미래를 보지 못한다. 시간이 지나 상황이 달라지면, 그때 아무도 다치지 않는다고 판단했던 것이 더 이상 그렇지 않게 된다. 판정은 뒤늦게 뒤집히는데, 그때는 되돌릴 수 있는 게 남아 있지 않다.

    앞에서 사람이 거짓말을 알아채는 정확도가 54%라고 썼다. 그 숫자는 뒤집어 읽어야 했다. 한 번이면 절반의 확률로 통과하지만, 반복하면 통과하지 못할 확률은 1에 수렴한다. 능숙하다는 건 실패를 없애는 게 아니라 미루는 것이다. 그리고 미뤄진 것들은 사라지지 않고 한곳에 쌓인다.

    무너질 때는 하나씩 무너지지 않는다. 쌓인 것 전부가 한꺼번에 무너진다. 그때 드러나는 것도 마지막 거짓말 하나가 아니라 그동안의 전부다.

    나는 지금 그걸 겪고 있다.

    그래서, 쓰지 않는 쪽으로

    이 글이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글이라는 걸 안다.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다.

    거짓과 기만의 대가는 상대에게 가기 전에 나에게 먼저 온다. 잘 통과한 거짓말은 사라지지 않는다. 내 안에 남아서 다음번에 같은 말을 조금 더 쉽게 만든다. 그렇게 선이 한 칸씩 밀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에는 무엇이 내 판단이고 무엇이 내가 만들어 둔 이야기인지 스스로도 구분이 안 되는 지점에 도달한다. 남을 다치게 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계산했는데, 정작 가장 먼저 깎여 나간 건 그 계산을 하던 사람이었던 셈이다.

    그래서 결론은 처음 쓰려던 것과 정반대가 되었다.

    잘 하는 법을 오래 익혔는데, 도착한 자리는 쓰지 않는 게 낫다는 쪽이다. 거짓말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다. 나쁘다는 말은 어릴 때부터 들었고, 그 말로는 한 번도 나를 멈추지 못했다. 그게 아니라 쌓이기 때문이다. 한 번은 통과해도 계속 쌓이고, 쌓인 것은 언젠가 반드시 한꺼번에 청구된다. 도구라고 생각하고 썼는데 실은 외상이었다.

    기준을 버리지는 않을 생각이다. 다만 이제는 허가증이 아니라 문턱으로 쓰려 한다. 무엇을 해도 되는지 확인하는 용도가 아니라, 여기까지 계산하고 있다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라는 신호로.

    잘 하기까지 오래 걸렸다. 하지 않는 쪽으로 가는 데는 아마 더 오래 걸릴 것이다. 그래도 그쪽으로 간다.

  • 독백

    시간이 조금씩 지나고 있다.

    오지도 않을 연락을 기다리는건 힘든일 이다.

    갑작스럽게 맞은 상황은 미리 준비하던 이에게는 정리하기 좋은 계기가 되었고, 준비되지 않은 이에게는 힘든 미련을 남기는 시간이 되었다.

    남아 있는 감정을 추스리고 다시 쏟아지면 추스리고를 반복하다보면 주워 담아야 하는 양도 줄어들어야 하는데… 아직 더 주워담을 감정이 너무 많다.

    힘차게 일상을 살아가다보면 괜찮아 지겠지 하다가도 문득 생각나면 표정이 굳는다. 언제쯤 괜찮아 질지…나도 누군가처럼 마찬가지로 만난 시간만큼 비례해서 지나야 하는건지…

    아직 철권도 못이겼는데… 에효

    언젠가 마주치면… 활짝 웃으면서 볼수 있기를…

    잘 지내라.

  • 시간을 죽인다는 말

    우리는 시간을 죽인다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씁니다.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도 그렇고,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영화에는 아예 ‘킬링 타임용’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시간을 보낸다고 하지 않고, 죽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표현은 조금 이상합니다.
    시간은 정말 죽일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내가 무언가를 피하고 있을 때 그렇게 표현하는 건 아닐까요.

    최근 업무를 하면서 시간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관리자로 일하다 보니, 내가 깊이 고민해야 할 일보다 누군가의 요청에 반응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결정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인터럽트를 줄여보겠다고 타임블록 업무 방법론을 시도해봤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생각이 점점 커지더군요. 결국 “나는 내 시간을 정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쓰고 있는가”라는 질문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로까지 이어집니다. 직장생활이란 결국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쓰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구조인데, 그 자체가 내 삶의 시간을 잘 쓰고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결론은 예전에 30살에 여행을 떠났을 때 스스로 내렸던 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직장 안에서도 충분히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며 스스로의 발전과 업그레이드를 함께 이루어 간다면 그 안에서도 내 존재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직장 내에서 선임이 될수록 내 경험과 결정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대신할 수 있도록 함께 경험을 쌓아주는 일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역할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시간 역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퇴근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저를 포함해) 퇴근하면 하루 종일 복잡했던 머리와 피곤함을 핑계로, 집에 돌아와 생각을 멈출 수 있는 유튜브나 티비 화면을 켭니다. 그 시간이 모두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는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회복이라기보다는 회피에 가까워진 건 아닌지 조금 고민스럽습니다.

    그래서 쉴 때도 너무 수동적인 것보다는 조금 더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걸 찾아보자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게 운동과 게임입니다.

    운동은 빠질 수 있으니 일주일에 세 번으로 정했습니다.
    게임은 제한을 두지 않았더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고, 이 글을 쓰면서도 조금 반성하게 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이 분명하면 먼저 그 일에 몰두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블로그 글쓰기나 AI 바이브 코딩처럼, 조금 미뤄도 당장 문제가 되지 않는 일들은 더 쉽게 밀리는 편입니다. 꼭 해야 하는 일은 해내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은 자꾸 뒤로 가는 구조입니다.

    결국 문제는 의지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조금씩 쪼개 꾸준히 한 가지를 이어가는 일, 그것을 생활로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아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한 번 더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가 생각해보면, 시간을 죽인다는 말은 무심한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시간은 죽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지나가고, 나는 그 위에서 무엇을 했는지만 남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을 죽이는 것이 곧 나를 조금씩 지워가는 일은 아닐까요.

    생각하면서 오늘은 시간을 죽이지 않고, 조금 더 의식적으로 써보는 하루를 보내보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