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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시간을 죽인다는 말

    우리는 시간을 죽인다는 표현을 자연스럽게 씁니다.
    카페에서 누군가를 기다릴 때도 그렇고, 게임을 하거나 유튜브를 볼 때도 그렇습니다. 영화에는 아예 ‘킬링 타임용’이라는 말이 붙습니다. 시간을 보낸다고 하지 않고, 죽인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 표현은 조금 이상합니다.
    시간은 정말 죽일 수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내가 무언가를 피하고 있을 때 그렇게 표현하는 건 아닐까요.

    최근 업무를 하면서 시간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관리자로 일하다 보니, 내가 깊이 고민해야 할 일보다 누군가의 요청에 반응하고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 결정하는 데 대부분의 시간을 쓰고 있다는 걸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인터럽트를 줄여보겠다고 타임블록 업무 방법론을 시도해봤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고 생각이 점점 커지더군요. 결국 “나는 내 시간을 정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쓰고 있는가”라는 질문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이 직장생활에 대한 회의로까지 이어집니다. 직장생활이란 결국 누군가를 위해 시간을 쓰고 그 대가로 임금을 받는 구조인데, 그 자체가 내 삶의 시간을 잘 쓰고 있는 것인가 하는 고민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결론은 예전에 30살에 여행을 떠났을 때 스스로 내렸던 답과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직장 안에서도 충분히 능동적으로 움직일 수 있고,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며 스스로의 발전과 업그레이드를 함께 이루어 간다면 그 안에서도 내 존재 가치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직장 내에서 선임이 될수록 내 경험과 결정들을 누군가와 나누고, 대신할 수 있도록 함께 경험을 쌓아주는 일은 어쩌면 피할 수 없는 역할입니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한 시간 역시 필요합니다.
    그래서 퇴근 후의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도 많이 고민했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저를 포함해) 퇴근하면 하루 종일 복잡했던 머리와 피곤함을 핑계로, 집에 돌아와 생각을 멈출 수 있는 유튜브나 티비 화면을 켭니다. 그 시간이 모두 나쁘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저는 어느 순간부터 그것이 회복이라기보다는 회피에 가까워진 건 아닌지 조금 고민스럽습니다.

    그래서 쉴 때도 너무 수동적인 것보다는 조금 더 능동적으로 할 수 있는 걸 찾아보자 싶었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게 운동과 게임입니다.

    운동은 빠질 수 있으니 일주일에 세 번으로 정했습니다.
    게임은 제한을 두지 않았더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쓰게 되었고, 이 글을 쓰면서도 조금 반성하게 됩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해야 할 일이 분명하면 먼저 그 일에 몰두합니다. 저 역시 그렇습니다. 하지만 블로그 글쓰기나 AI 바이브 코딩처럼, 조금 미뤄도 당장 문제가 되지 않는 일들은 더 쉽게 밀리는 편입니다. 꼭 해야 하는 일은 해내지만, 꼭 하고 싶은 일은 자꾸 뒤로 가는 구조입니다.

    결국 문제는 의지라기보다 습관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내게 주어진 시간을 조금씩 쪼개 꾸준히 한 가지를 이어가는 일, 그것을 생활로 만드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아마 그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에 한 번 더 정리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다시 돌아가 생각해보면, 시간을 죽인다는 말은 무심한 표현인지도 모릅니다. 시간은 죽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지나가고, 나는 그 위에서 무엇을 했는지만 남습니다.

    그렇다면 시간을 죽이는 것이 곧 나를 조금씩 지워가는 일은 아닐까요.

    생각하면서 오늘은 시간을 죽이지 않고, 조금 더 의식적으로 써보는 하루를 보내보려고 합니다.

  • 생각이 많다는 건, 사실 핑계일지도 모른다

    김연아 같은 사람을 보면 늘 궁금했습니다.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 오래 묻지 않는다는 점.

    물론 고민이 없었을 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 그녀는

    “왜?”라는 질문에 머무는 사람이 아니라

    “한다”를 반복하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그 반대에 가까웠습니다.

    왜 이걸 해야 하는지,

    이 방법이 최선인지,

    다른 선택지는 없는지.

    생각은 깊어졌지만

    움직임은 늘 느렸습니다.


    완벽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냥 미뤘다

    돌이켜보면

    거창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솔직히 말하면,

    그냥 미뤘던 것 같습니다.

    게을렀던 날도 많았고,

    막상 시작해놓고도

    “이 정도면 부족한데?” 싶으면

    그냥 지워버렸습니다.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초안을 쓰고,

    다시 고치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아예 없던 일로 만들었습니다.

    문제는 그 과정에서

    결과도 같이 사라졌다는 겁니다.

    아무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완벽하지 않아서 공개하지 않았던 글들은

    완벽해질 기회조차 얻지 못했습니다.


    저는 물건을 살 때도 그렇습니다

    저는 물건을 쉽게 사지 못합니다.

    리뷰를 찾아보고,

    비교 영상을 보고,

    스펙을 정리하고,

    가격 변동을 확인합니다.

    그러다 “다음 버전이 곧 나온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지금 당장 사지 않고 기다립니다.

    조금 더 나은 선택을 하고 싶어서입니다.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해왔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깨달았습니다.

    그 기다림이 항상 더 좋은 결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을.

    완벽한 제품은 없고,

    완벽한 타이밍도 없습니다.

    결국 중요한 건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아니라

    선택 이후에 어떻게 사용하는지였습니다.


    실행도 다르지 않았다

    “조금 더 나은 시점에.”

    “조금 더 준비가 되면.”

    그렇게 기다리다 보면

    결정은 늘 뒤로 밀렸습니다.

    완벽한 순간은 오지 않았고,

    완벽한 확신도 생기지 않았습니다.

    앞서 나가는 사람들을 보면

    대단한 전략보다 먼저 보이는 것이 있었습니다.

    일단 한다는 태도.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하고,

    틀리면 고치고,

    부족하면 보완합니다.

    생각이 없어서가 아니라,

    생각에 붙잡히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차이가 결국 결과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변명이 하나 줄었다

    예전에는 이런 핑계를 많이 했습니다.

    “혼자서는 정리가 어렵다.”

    “글을 쓰려면 구조가 완벽해야 한다.”

    “아이디어는 있는데 문장으로 만들기가 힘들다.”

    그런데 지금은 다릅니다.

    AI가 있습니다.

    초안을 함께 만들 수 있고,

    생각을 구조화할 수 있고,

    정리되지 않은 문장을 다듬을 수 있습니다.

    완벽하지 않아도 시작할 수 있는 도구가 생겼습니다.

    이건 분명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의 축복이라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도구가 없어서가 아니라,

    여전히 시작하지 않는 태도일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Doorun

    Doorun은

    대단한 브랜드가 아닙니다.

    제 자신에게 하는 약속에 가깝습니다.

    Doo + Run.

    생각을 멈추라는 뜻이 아니라,

    생각에만 머물지 않겠다는 다짐.

    완벽하지 않아도 올리고,

    부족해도 공개하고,

    틀리면 고쳐가는 과정을 그대로 기록해보는 것.

    이번에는

    완벽한 다음 버전을 기다리지 않으려 합니다.

    지금 이 버전으로 시작해봅니다.

    Doo.

    그리고 Run.

    — 이찬두